100 번째 글을 올리는 느낌

입력 2006-05-03 10:26 수정 2006-05-03 10:26
칼럼이랄 것도 없는 작은 토막글을 쓴지 2년이 지났다.

 

물론 그 전에도 다른 잡지와 사보(社報)에 글을 쓰긴 했지만, 불특정 다수가 보는 언론 매체에 공개적으로 정기적인 글을 쓰는 일은 처음이었다. 처음 몇 편의 글을 쓰기 위해 생각을 글로 옮길 때는 단단한 각오를 했지만, 차츰 “첫 마음”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날이 갈수록 생각의 무게는 가벼워지고 또 다른 욕심이 생겼다. 정기적으로 주기적으로 쓸만한 글의 주제를 찾고 소재를 발견하기 위해 걸으면서 생각하고 화장실에서 고민했다.

 

 

너무 지나친 글이다 싶어 써놓고 올리지 않은 글은 수도 없이 많다. 어색한 문장을 지워버리고 싶어 갈등을 하다가 결국엔 독자로부터 항의메일을 받기도 하고, 세대차이와 인식의 오류로 인해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시원하게 써 놓은 글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싱거운 이야기로 퇴색되기도 했고, 결과가 바뀌어 의미 없는 쓰레기로 자리만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쓰는 글만큼 이야기하는 말만큼 행하지 못해 양심의 가책을 받으면서 강의를 하고 글을 쓰고 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좋은 글을 쓴다는 게 얼마나 어렵고 남의 글을 제대로 읽는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느끼게 된다.

 

오죽하면 독일의 사상가 막스 웨버(Max Weber)가 “일단 눈가리개를 하고서, 어느 고대 필사본의 한 구절을 옳게 판독해 내는 것에 자기 영혼의 운명이 달려 있다는 생각에 침잠(沈潛)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아예 학문을 단념하라”고 했겠는가?

 

 

어려운 단어와 복잡한 문장의 행간을 읽기 위해 더 많은 학문의 깊이를 준비해야 하는 외르겔 하버마스의 글, 10년에 한 권씩 쓰여지는 앨빈토플러의 책, 100세를 살면서 500년의 역사를 쓴 자크 바전의 사상을 이해하고 그들의 글에 침잠할 수 있어야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에 고통을 느낀다.

 

 

며칠 전, 한 대가(大家)의 책을 읽고 일간지에 서평(書評)을 올린 후 그것이 얼마나 경박스러운 일인지 뒤늦게 깨달았다. 연습의 기회를 만들기 위해 기업으로부터 사보(社報)의 칼럼을 써 달라는 급작스러운 부탁도 거절하지 않았다. 많은 글을 읽는 것보다 좋은 글을 선별해서 읽고, 많은 글을 쓰는 것보다 가치 있는 문장을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노력이 필요함을 새삼 느끼는 요즘이다.

 

 

100번째 글을 올리면서 또 다시 다짐한다.

 

“완전하지 않아도, 아쉽고 부족한 점이 있어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망설이지 않고 행하리라. 죽으면서 후회하지 않기 위해” 
(사) 한국강사협회 회장 역임, 코리안리 재보험(주), 데이콤ST 근무, (주)스카우트 부사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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