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고수(高手)와의 하룻밤

입력 2006-03-16 07:56 수정 2006-03-16 08:21
 

최근 어느 기업체 교육 프로그램 진행에 한 강사분과 함께 할 기회가 있었다. 그 분의 강의를 듣고, 함께 진행하면서 심부름도 하고, 식사를 하고, 같은 방에서 잠을 잤다. 몇 가지 묻고 싶은 사항이 있어 질문을 했더니 참고하라며 서너 개의 자료파일을 통째로 주었다. 귀중한 자료를 아무 생각 없이 주시는 것 같아 놀라면서 쭈뼛쭈뼛 했더니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활용방법까지 설명해 주셨다.

 

교육진행 방법은 물론 예상했던 대로 차분하고 진지했으며, 진행 과정(Process)과 사용하는 기법(Tools)이 체계적이고 효과적이었다. 단순한 강의나 교육이 아니라 교육 참석자 개개인의 삶과 인생에 자극을 주며, 사고(思考)의 틀과 방향을 깨는 철학이 담겨 있었다. 가끔 던지는 유머엔 폭소가 터져 나왔다. 이 정도는 조금만 배우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교육일정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 온 후부터 나의 기대와 생각은 바뀌기 시작했다. 다음날 강의를 준비하기 위해 두어 권의 책을 밑줄 치며 읽어 가며 TV도 보지 않고, 미국을 잠재운 야구 뉴스도 보지 않으며 강의자료를 만들고 있었다. 7시간 진행할 강의 계획에 대한 시나리오를 노트에다 빽빽하게 적고 있었다. 다 알고 있는 내용을 뭣하러 시나리오까지 적어 가면서 준비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점심시간에도 식사를 하지 않고 강의 준비를 하셨는데...

 

 

내려 가서 고기 한 점 올려 놓고 소주 한 잔이라도 걸치고 싶었다.

 

그 분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인생을 논하고 싶고, 그 분이 살아 온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러나 자정이 다 되어 먼저 자리에 들 때까지 그 분은 공부만하고 있었다. 잠자는 게 부끄러워 내일 아침엔 내가 먼저 일어나서 책 읽는 모습을 보여 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졸음을 참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꿈속에 빠졌다.

 

새벽 4시 반쯤 화장실에서 물소리가 났다. 5시에 맞춰 놓은 내 모닝콜은 울리지도 않았는데 그 분은 벌써 목욕재개를 하고 계신 게 아닌가? 또 다시 부끄러운 모습을 보인 게 되었다.

 

온천 지역이니 만큼 아침 일찍 내려가 온천욕이라도 하고 싶다고 했더니, 객실에도 온천물이 나오니까 부담 갖지 말고 들어가서 푹 담그고 있으라고 하신다. 그것도 좋겠다는 생각에 욕실에 들어가 물을 받아 놓고 몸을 담그고 있었지만 시원치가 않았다. 이렇게 편히 몸 담그고 앉아 있는 게 죄를 짓는 것 같고, 이렇게 살면 안 되는 것 같았다. 경쟁에서 뒤지게 되고, 실력이 저하되고, 그냥 모든 미래가 멈추어 버릴 것 같았다. 뜨거운 물 속에 더 오랫동안 머물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충분하실 분인데, 뭐가 아쉬워 잠을 설쳐가며 식사를 걸러 가며, 촌음을 아껴 가며 강의 준비를 하시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해할 수 없는 고수(高手)와의 1박 2일은 또 다른 깨달음의 시간이었다.

 

“같은 일과 행동을 반복하며 다른 결과가 나오기를 바라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아인쉬타인의 말이 생각난다.

“훌륭한 의사는 아플 권리도 없고 자유도 없다.”고 2,500년 전에 히포크라테스가 말했다.

 

훌륭한 지도자는 무식하고 게으를 권리도 없고 자유도 없다는 말인가? 
(사) 한국강사협회 회장 역임, 코리안리 재보험(주), 데이콤ST 근무, (주)스카우트 부사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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